회화를 예술로 이해 발전시키기 위해 인류는 구상적 기교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르네상스를 거쳐 시각적 본질을 이야기하는 미니멀리즘까지 여러 단계의 개념들을 만들어 나가고 다듬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예술로서 회화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크게 변화 순환되는 역사의 카테고리 안에서 그 시대적 경향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에 기획되어진 ‘the painting’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져도 좋을 것이다. 새로운 예술 매체의 등장, 특히 사진의 눈부신 발전은 회화에 여전히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오랫동안 회화로 하여금 극사실주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사실 사진과의 미묘한 경계선상에서 이루어지는 시각적 유희는 두 매체 모두에게 여전히 매혹적인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의 시각을 현혹시키는 모든 형태적 요소들이 거추장스럽고 때로는 힘들게 조차 느껴진다. 온갖 시각적 자극과 사치로 충만함이 가득한 나의 눈은 지금 이쯤에서 창조자와 단 둘이 은밀하게 나눌 수 있는 내면적인 이야기들을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번 전시를 통해 보편적인 시각경험과 사고의 틀을 벗어나 회화의 본질적 요소인 선과 색으로 이야기 되어지는 회화, 오로지 예술가 한 개인의 사적인 사유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어지는 시각의 세계를 기대해 본다.

김상윤은 수없이 반복되어지는 선과 색 그리고 그것의 강약을 통해 시각적 리듬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의 작업이 우리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청각으로 보여 지는 개념의 회화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그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잔잔한 클래식음악의 한 소절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경은 덕테잎과 아크릴 물감을 이용하여 그녀만의 독특한 색채들을 수평적으로 반복되어지는 규칙적 패턴안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우리로 하여금 쉽게 심상적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불쑥 튀어 나오는 듯 하게 느껴지는 불규칙한 시각적 단절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보편적 명상의 틀을 벗어나 작가만이 가지고 있는 독톡한 시각언어에 빠져들게 만든다.

조병왕의 작업은 광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다시 초광택 플라스틱 컬러 인화지에 프린트 한 뒤, 칼과 자를 이용하여 사진의 표면 위를 긁어 수 천 개의 수평선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이렇게 회화, 사진, 입체 프로세스를 거치는 그의 작업을 엄밀하게 이야기한다면 회화로 분류해야 될지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인화지라는 물성이 만들어내는 선과 색을 통해 작가가 개발해낸 독특한 프로세스는 ‘입체를 입고 있는 회화’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조적이면서도 완성도 높게 표현하고 있다.

기획: EKMA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