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CAME

서 지 원

2012.6.15-6.30

 

Artificiality Wind. Oil on linen. 145.0 x 160.0cm. 2012

 

 

현실과 회화의 경계

 

정용도

 

무엇을 예술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혹은 무엇이 예술작품의 본질에 관해 기술하는 요소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대부분의 미학자들은 한 인간이 자연적인 질료에 행위를 통해 미학적으로 합리적인 형식을 부여했을 때, 그리고 그 형식을 다른 사람들 혹은 예술전문가들이 그들의 감수성을 통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있을 때, 그것을 예술적인 오브제 혹은 예술작품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예술작품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라기보다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자격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반성적인(reflective) 시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이후의 현대미술은 미술적인 접근에서 예술에 대한 정의적인 개념을 포괄적으로 예술의 상황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미술 작품의 제작 행위에 공예적인 실용성으로부터 벗어난 미학적인 본질에 대한 성찰이 전제되어야만 한다는 것과 동일한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술은 환영에 기반을 둔 재현의 왕국에서 인간 인식의 범주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회화작품은 세계로 향한 창문이 아니라, 이 세계를 인식하고자 하는 철학적 사유의 차원으로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지원의 작품은 물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전통회화의 재현적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게되면 그의 미술에서 분명히 환영적인 차원들이 그의 작품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1차적 지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미술에서 재현적인 것은 다분히 표면적이다. 그리고 그의 화면에서 적극적으로 보여지는 표면성을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의도했던 상식에 기반한 공간적 질서의 왜곡에서 비롯된 생경함에 비교해 설명하려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지원의 화면에서는 상식적인 질서들의 뒤틀림(twist)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지향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는데, 이는 작가가 사물들의 물질적 존재성을 그대로 표면 위에 각인시켜 놓은 듯 이질성이 목격되기 때문이다. 그의 화면에서 형식과 배경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3차원의 공간에서 처럼 개별적 존재성을 주장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 같은 표면성은 미술의 전통적인 표현기법과 형식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화면 속의 자연 풍경과 사물들의 비유기적인 조합이 서지원의 회화를 설명하는 적극적인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安養川花盆木塔. Oil on linen. 110.0cm x 120.0cm. 2011

 

Empty Lot. Oil on linen. 130.3 x 97.0cm. 2011

 

 

서지원의 화면에는 전통 회화가 가지고 있는 재현적 전통에서 볼 때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생략되어 있는데, 인간의 삶을 재현적으로 대변해 줄 수 있는 상징성이 부재한다는 것이다. 환영적이기는 하지만 재현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자연적이기는 하지만 의식적이기 때문에 다른 해석들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서지원 작품의 화면에 서술되어 있는 형상들의 이질성은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낮설게 하기”의 감성과 비슷한 부조리극의 정서를 상기시킨다. 마치 ‘이것은 그림이다’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듯 보인다. 여기서 관객의 정서적인 감성들은 회화작품의 내용으로, 혹은 내러티브로 파고 들어가지 못하고 화면의 표면에 부딪치고 다시 반사되어 허공으로 산개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관객이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관객들은 풍경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풍경의 주인공이자 일인칭적인 전지적 관찰자가 되지 못하고 화면 외부에 머물게 된다. 그의 화면은 현실과 회화의 경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질적인 물성을 지닌 화면 속의 오브제적 형상들은 각각이 강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예상치 못한 정서적인 전이를 가져온다. 즉 회화의 전통에서 볼 때 그런 오브제들은 상징이어야만 하는데, 말하자면 형상은 전통 회화에서의 아이콘들이 보여주는 상징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그런 형상들이 스스로의 물성을 끊임없이 드러냄으로써 상징성은 스스로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Empty Lot. Oil on linen. 130.3 x 97.0cm. 2011

 

Empty Lot. Oil on linen. 165.0 x 180.0cm. 2011

 

 

종합을 지향하지 않는 이런 전이의 과정이 회화의 표면과 회화의 내용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관객들의 시선은 그의 회화에 정착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의식 혹은 자의식의 상태로 복귀하게 된다. 이성적 분석에 의존하여 작품을 이해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회화의 오브제 형상들은 그런 일방적인 상황을 용인하지 않는다. 이것은 기능적으로 존재하지만 정서적으로 휴식이 불가능한 장소인 자동차 도로와도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사물에 대한 인식의 차원과 그 인식의 작용 속에서 발생하는 사물에 대한 정의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자의식적인 간극이 만들어내는 ‘낮설음’이다.

 

자의식은 의식의 과잉으로부터 비롯된다. 어떤 것으로부터 비롯되든 의식의 과잉은 한 존재의 표면과 내부의 괴리감을 만들어낸다. 브레히트는 오히려 연극에서 그런 괴리감을 그의 예술적인 장치로 만들어버렸다. 서지원이 미학적으로 분명하게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의 화면에서는 예술적 자의식으로부터 비롯되는 현실과 회화의 비타협적인 경계가 던져놓는 존재론적인 간극들이 존재한다. 회화라는 절대적인 미학적 세계로부터 이전 단계의 자연적 의식의 세계로 복귀할 수 있게 해주는 간극은 역사라는 시간 의식으로 부터도 벗어나 있고, 그렇다고 절대적인 회화의 의식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Empty Lot. Oil on linen. 110.0 x 120.0cm. 2011

 

 

서지원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자의식적인 상황과 중첩되어 있는 의식은 그의 회화의 표면과 내용이 서로 중첩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 양태를 보여준다. 그리고 의식과 재현적 형상들이 서로 이질적으로 공존하는 회화적 공간의 낮설음으로 인해 관객들은 그의 작품으로부터 서로 화해될 수 없는 파편적 의식의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파편성은 회화적 의식과 회화로의 의식적 지향이 충돌함으로써 발생하는 낮설음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형식적, 상징적으로 화면에 혼재하는 파편성은 개념적인 회화로서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화면에 묘사된 오브제들의 물성이 가지고 있는 존재성이 드러내는 독립적인 의식들이 작가의 회화에 대한 개념적인 장치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작가의 의식과 회화적 환영의 충돌은 그의 회화를 연극성 혹은 의식의 자기기술적(self-descriptive)인 회화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서 지 원 / Seo, Ji Won

 

학력

2012 ·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서양화학과 재학

2010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학과 졸업

 

개인전

2012 · NEVER CAME, 갤러리아트사간, 서울

 

단체전

2011

· 미술용어사展, 갤러리 브레송, 서울

· Summer Drawing Festival , 쿤스트독, 서울

· Boiling Point 2010 - 2011, 쿤스트독, 서울

2010

 · 마주보기 – 서지원, 박민수 2인전, 솜씨, 서울

· 헤르메틱 미무스, 국민아트갤러리, 서울

· 문래아트 아카이브, 영등포 아트홀, 서울

· TAKE FIVE, 갤러리 루트, 서울

· Boiling Point 2010, 쿤스트독, 서울

2009

 · 세이케이 – 중앙대학교 교류전. 일본문화원 공보문화부 실크갤러리. 서울